디자이너좀 그만 괴롭히세요
Topic안녕하세요, Lovefield입니다.
최근에 디자이너분들과 이야기를 하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하루 이틀이 아니었기에 자연스레 디자이너가 가진 고충을 들을 수 있었어요. 단편적인 예일 수도 있지만, 제가 6년 차가 될 동안 겪은 경험과 크게 동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디자이너를 괴롭히는 여러 가지 일들에 관하여 이야기해볼게요.
1. 디자인을 검수하는 사람들
모든 직군에 해당하는 이야기입니다. 그중에서도 디자인은 유독 심해요. 최종 결정권자 한마디로 인해 모든게 뒤바뀔 수 있습니다. 디자이너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주범이죠. 이들은 디자이너보다 높은 직위를 가지고 있지만, 디자인에 대한 지식은 한없이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결과는 뻔하겠죠? 디자인을 검수하는 기준이 수많은 경험으로 축적된 이론을 제쳐둔 채 “개인이 지닌 한정적인 시야"가 돼버립니다. 디자인을 왜 이렇게 했는지에 대한 기초지식이 없이 주관적인 잣대로 결정하죠. 디자이너는 상업디자인을 하는 전문가입니다. 사용자에게 호응을 얻기 위해 그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끝없는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죠. 최종 결정자의 주관적인 기준이 사용자를 오래 머물 수 있게 해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네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상급자라는 이유로 디자인을 망치는 요청이 들어옵니다. 결국 유저 경험을 무시한 최종 결과물은 시장 반응이 좋지 않을 수밖에 없고, 불편함을 느끼는 사용자는 떠나고 맙니다.
다음 예시 두 가지를 봐보겠습니다.
우선 인천국제공항 로고 논란 사태입니다. 다른 논란도 있었지만 일단 디자인 관점에서만 바라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측은 한반도와 불사조 등을 표현하기 위해 디자인했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이를 모르는 일반인이 보기에 불사조는커녕 닭처럼 보일 겁니다. 오히려 중국 항공사 로고와 비슷하다며 강한 거부감을 나타냈습니다. 추측에 가깝지만, 최종검수자가 “불사조가 잘 드러나면 좋겠다”, “한반도 모양이 잘 보였으면 좋겠다"는 주관적인 결정을 했을 가능성이 높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디자이너는 동종업계 로고를 참고하면서 브랜드와 회사에 어울리는 BI를 만들기 위해 많이 고민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디자인을 모르는 검수자의 독단적인 사고는 모든 걸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다음은 해피포인트에 대한 이슈입니다. 사실 사용자 사이에서는 크게 이슈가 되지 않았습니다. 디자이너 커뮤니티에서 이슈가 된 사안으로 주 색상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오갔습니다. 디자이너라면 위 컬러 칩을 보고 조금 의아해하실 겁니다. 비전문가를 위해 이야기를 드리자면 망하지 않는 컬러 고르는 공식이라는 글에서 볼 수 있듯이 색상을 조합하는 법칙이 있습니다. 하지만 위 컬러 칩은 해당 글에서 말하는 조건이 하나도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물론 해당 글이 정답은 아닙니다. 선택한 색상을 제대로 활용한다면 문제없죠.
해피포인트 앱 아이콘입니다. 눈앞이 조금 아찔해지는군요…
디자이너가 컬러를 고르는 법을 모르지 않을 것입니다. 실제로 디자인할 때 컬러 선정은 많은 고민 끝에 이루어집니다. 어째서 이런 컬러 조합이 나왔을까요? 보나 마나 최종결정자 입김일 겁니다.
2. 연봉
디자이너 연봉은 생각보다 낮게 측정됩니다. 개발자와 비교해 보았을 때 디자이너 연봉이 훨씬 낮거든요. 저는 이 부분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디자이너가 만든 디자인 하나로 수십만 명 사용자의 마음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데, 시장 가치가 지나치게 평가 절하되어 있습니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감각 중 시각이 70%를 차지합니다. 그런데도 시각적인 요소를 극적으로 활용하여 사용자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유저를 끌어모으는 전문가의 대우는 너무나도 차갑습니다.
여기에는 디자이너를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게 가장 크지 않을까요?
이들이 하는 디자인은 예술이 아니라 상업디자인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는 것 같거든요. 업계에 존재하는 디자이너는 상업디자인을 하는 전문가입니다. 상업디자인을 잘했는지에 대한 지표는 사용자의 호응도와 시장 반응으로 알 수 있습니다. 신규 사용자가 얼마나 유입되었는가, 기존 사용자의 이용 시간이 얼마나 늘었는가, 그들이 회사가 의도한 대로 움직였는지가 지표가 될 수 있죠. 사용자 행동 패턴을 분석하면 손쉽게 알아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회사가 사용자 행동 데이터를 분석하는 걸 소홀히 여깁니다. 무엇이 중요한지 모르는 회사가 수두룩하거든요.
한편 디자인을 하찮게 여기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일단 제품을 먼저 만든 뒤 나중에 디자인을 입히면 된다는 식으로 생각을 하는데, 이건 디자이너뿐만 아니라 개발자를 괴롭히는 행위입니다. 제품을 만드는 건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움직여야 하는 팀플레이입니다. 기획자, 디자이너, 개발자가 합을 맞춰 시너지를 일으켜야 하는 작업입니다. 디자인 없이 개발하라는 소리는 마치 설계도 없이 집을 지어달라는 이야기와 비슷합니다. “기능만 있으면 되지 않냐”이라고 흔히 이야기하는데, 사용자가 해당 서비스를 찾을 수 없다면 제 기능을 하는 걸까요?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기능은 없으니만 못합니다.
개인적으로 한 필드에서 협업하는 기획자, 디자이너, 개발자의 연봉 차이가 크게 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3. 개발자가 되려는 디자이너들
프론트엔드 개발자 입장에서 개발을 배우려는 디자이너를 볼 때마다 굉장히 안타깝습니다. 디자이너에게 웹 퍼블리싱(HTML, CSS)을 요구하는 회사가 줄지 않고 있습니다.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개발자 연봉이 더 높기에 싼 값어치를 지불하면서 서비스를 만들고 싶어 하는 마음이 한몫하는 것 같습니다. 한사람으로 최대한 많은 걸 해결하려고 하는 멍청한 짓을 하는 것도 크게 작용하는 거로 보이네요.
제발 디자이너에게 개발 관련 업무를 시키지 않기를 바랍니다. 제품을 제작할 때 고려하는 디자인 관점과 개발 관점은 천지 차이입니다. 한 번 기능 구현을 위한 로직에 치우쳐 제품 제작을 신경 쓰면 다시 디자인적 관점으로 돌아가기가 힘들어집니다. 디자인과 개발은 사용하는 지적 영역이 다릅니다. 사고방식 자체가 다릅니다. 한 사람에게 모든 걸 떠맡긴다면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하나둘 누락되기 시작할 것이고, 그 여파는 고스란히 회사가 떠안게 되겠죠.
디자이너가 개발을 아예 몰라야 한다는 소리는 아닙니다. 디자이너는 자신의 디자인이 어떻게 구현되는지 알 수 있는 정도의 개발 지식이면 충분합니다. 이론과 직접 구현하는 실무는 전혀 다른 문제예요.
4. 끝마치며
저는 예술대학교 디자인과를 나와서 개발자가 된 특이케이스입니다. 디자이너가 고려하는 점도, 개발자가 고려하는 관점도 전부 이해하고 있지요. 그래서일까요? 사측의 욕심으로 디자이너분들이 힘들어하고 커리어가 망가져 가는 모습을 보며 분노를 느꼈습니다. 사용자가 부담 없이 편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서비스에 생명을 불어넣는 디자인을 중요하게 보기도 하지만, 협업 시너지를 무시하는 회사에 대한 분노가 느껴지더군요. 디자이너가 디자인을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한탄스러운 글을 끄적여 보았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